‘공대’가 밈이 되는 시대, 기술의 위상을 다시 세워야 한다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 ‘공과대학’은 본래 국가 경쟁력의 핵심을 상징하는 단어다. 그러나 온라인 공간에서 ‘공대’는 대학 단과대학이 아니라 게임 공대(파티)나 커뮤니티의 서열어로도 소비되고, 연애·결혼 시장의 ‘학벌 배지’처럼 언급되기도 한다. 공대라는 말이 이렇게 다층적으로 쓰인다는 사실은, 우리가 기술과 공학을 대하는 태도가 존중과 기대만큼이나 피로와 왜곡도 함께 커졌음을 보여준다.
참고 자료에서 드러나는 풍경은 세 갈래다. 첫째, 게임 커뮤니티에서의 ‘공대’는 성능 수치와 컷라인을 중심으로 사람을 분류하고 배제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둘째, 입시·학벌 담론에서 ‘공대’는 취업 가능성과 사회적 체면을 보증하는 기호로 소환된다. 셋째, 특정 대학·기업을 엮어 서열을 가늠하는 농담은 공학 교육이 지닌 내용보다 간판이 더 큰 목소리를 갖는 현실을 비춘다. 공대가 삶의 여러 장면에 침투한 만큼, 그 의미도 ‘공학’에서 ‘계급 표식’으로 미끄러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한국의 공과대학은 산업화의 견인차였다. 압축 성장기에는 인력 동원이 최우선이었고, 공대는 국가가 요구하는 생산기술을 빠르게 공급하는 기관으로 자리했다. 이 과정에서 ‘공대=먹고사는 길’이라는 통념이 굳어졌고, 대학은 교육보다 배치(placement)에 최적화되는 유혹을 받았다. 하지만 산업 구조가 고도화된 지금도 과거의 프레임이 남아, 공대는 여전히 ‘인생 보험’으로만 평가되고, 공학의 공공성·윤리·창의성은 부차화되기 쉽다.
문제는 서열화가 공학의 생태계를 약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커뮤니티에서 컷라인이 사람을 갈라치듯, 현실에서도 ‘학벌-스펙-직장’의 단선적 지표가 인재를 재단한다. 이는 공학이 본질적으로 요구하는 협업과 실패의 학습, 장기적 연구축적과 배치된다. 또한 연애·결혼 담론에서 학벌이 ‘뽕’의 대상이 되는 순간, 개인의 역량과 성실은 사라지고 간판만 남는다. 공대가 사회적 신분 상승의 도구로만 해석될수록, 공학 교육은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폭을 잃고 ‘문제풀이 기술’로 축소될 위험이 있다.
더 큰 맥락에서 공대의 위상은 ‘기술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와 직결된다. 기술은 이미 일상과 민주주의, 안전과 노동을 규정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공학을 시민적 언어로 토론하기보다 취업 통계와 연봉 표로만 소비한다. 그 결과 공학은 존중받는 것 같지만, 정작 연구·개발의 조건(연구윤리, 안전, 실패를 감내하는 R&D, 산학 협력의 공정성, 현장 노동의 처우)은 충분히 논의되지 않는다. ‘공대’가 유행어가 되는 만큼, 이제는 공학을 사회적 책임의 언어로 되돌려야 한다.
따라서 대학은 취업률 경쟁을 넘어 교육의 본령을 회복해야 한다. 공과대학은 전공 지식만이 아니라 데이터·AI 시대의 기본 소양, 안전·환경·인권을 포함한 공학윤리, 그리고 협업 중심의 프로젝트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기업과 정부도 ‘즉시 투입형 인력’만 요구하기보다 석·박사급 연구 인력의 장기 성장 경로, 실패를 허용하는 연구 문화, 공정한 산학 협력 모델을 마련해야 한다. 공대를 ‘간판’이 아니라 ‘기술 시민성’을 길러내는 공적 기관으로 재정의할 때, 공대는 다시 국가의 기반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