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실검이 비추는 것: 재벌 CEO를 ‘국가의 얼굴’로 소비하는 사회
‘최태원’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는 방식은 늘 비슷하다. 기업의 성과나 전략보다, 몇몇 재계 총수를 한 묶음으로 부르며 ‘대통령 같다’, ‘국가를 먹여 살린다’는 식의 과잉 상징화가 먼저 달린다. 온라인에서는 이재용·최태원·정의선을 일종의 ‘삼신’처럼 호명하며 주가와 국운을 연결하고, 개인의 사생활을 자극적으로 소환해 조롱과 숭배를 뒤섞는다. 이 현상은 단순한 팬덤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권력과 성과를 해석하는 방식의 민낯을 드러낸다.
첫째, ‘총수=국가’ 프레임은 경제 성과의 복잡성을 지워버린다. SK의 하이닉스 성장 서사처럼—해외 수출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결단이 실제 산업 경쟁력을 만든 측면은 분명 있다—한 기업인의 선택이 산업 지형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러나 반도체 생태계는 정부의 규제·지원, 노동자와 협력사의 축적, 글로벌 수요와 기술경쟁, 금융시장까지 얽힌 결과물이다. 이를 특정 개인의 영웅담으로 환원할수록, 우리는 ‘제도와 구조’가 아닌 ‘인물’에 기대는 습관을 강화한다.
둘째, 온라인 공간의 양극화된 태도 변화—어제는 감옥에 보내자고 했다가 오늘은 코스피를 위해 띄운다는 식의 전환—는 재벌 담론의 취약함을 보여준다. 법과 제도는 개인 호감도에 따라 흔들리면 안 된다. 경제가 어렵다고 해서 ‘성과가 있으니 눈감자’는 결론으로 가면, 기업지배구조 개선이나 공정한 경쟁질서 확립은 영원히 뒷전이 된다. 반대로 감정적 혐오로만 접근해 기업 활동 전체를 ‘악’으로 단순화하는 것 역시 생산적 해법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일관된 원칙이다.
셋째, ‘마누라 바꾸고’ 같은 사적 영역을 끌어와 정치적·경제적 평가에 섞는 문화는 한국 사회의 취약한 공론장을 상징한다. 대중은 재벌의 사생활을 소비하면서도, 정작 지배구조, 내부거래, 준법경영, 노동과 안전, 협력사 상생 같은 의제에는 관심을 덜 준다. 그 결과 CEO는 ‘인간 최태원’과 ‘기업 SK’ 사이에서 책임의 경계를 흐릴 수 있고, 사회는 감정적 클릭은 얻되 정책적 학습은 남기지 못한다. 공적 권력을 가진 경제 주체에 대한 비판은 사생활이 아니라 공적 책임을 중심으로 재편돼야 한다.
넷째, 역사적으로 한국의 재벌은 국가 주도 산업화의 산물이었고, 그 과정에서 ‘성장=정당성’이라는 관성이 만들어졌다. 외환위기 이후 지배구조 개혁과 시장규율이 강화됐지만, 위기 국면이 올 때마다 우리는 다시 ‘총수의 결단’에 매달린다. 이는 정치가 신뢰를 잃을수록 경제 권력에 구원 서사를 부여하는 경향과 맞물린다. 정치가 제 역할을 못 하면, 시민은 기업인에게 국가 운영의 환상을 투사하고, 기업인은 그 환상을 이용해 사회적 승인과 규제 완화를 요구하게 된다. 민주주의에 위험한 거래다.
이제 필요한 과제는 분명하다. 첫째, 기업 성과를 칭찬하더라도 ‘개인 숭배’가 아니라 ‘시스템 평가’로 옮겨가야 한다. 둘째, 재벌 총수에 대한 평가는 호감이나 루머가 아니라 투명한 지배구조, 준법·감사 체계, 노동·안전, 기술투자와 상생 성과로 측정해야 한다. 셋째, 정치권은 기업인을 대체 통치자로 떠받들거나 희생양으로 삼는 쉬운 유혹을 버리고, 예측 가능한 규칙과 공정한 경쟁 환경을 설계해야 한다. ‘최태원’ 실검은 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우리가 경제 권력을 다루는 언어와 기준을 바꿔야 한다는 신호다.